제목 교의도의 용도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
글쓴이 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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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의도(交椅圖)의 용도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

 


 

교의도란 제례나 상례시 신주나 혼백 등을 올려놓던 용도의 의자인 교의(交椅)를 그린 그림이다. 국학진흥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교의도 상단에 영위도(靈位圖)라고 화제가 적혀있어 달리 영위도라 부르기도 한다. 이 교의형의 용도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은 위패의 배경이 사당건물이 아닌 사당 내부의 교의로 바뀐 것으로만 보고 사당형 감모여재도와 마찬가지로 제사용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교의의 본래 용도는 사당에서 신주를 올려놓는 기능뿐만 아니라 상례시에는 혼백을 올려놓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동일한 교의에 대해서 脫喪前 궤연(几筵:상청, 빈소) 모실 때는 혼백(魂帛)이나 화상(畵像)을 올려놓는 용도로 사용하며 영좌교의(靈座交椅)라 명칭하고 평소 제사를 지낼 때나 사당에 둘 때는 신주를 올려놓는 용도로 사용하면서 신좌교의(神座交椅)라 명칭한다. 이는 상례절차 속에서 망자의 혼백이 조상신으로 안착하게 되는 과정에 따라 영()에서 신()으로 명칭을 달리하는 것에 따른 구분으로 보인다. 이러한 구분에 따르면 교의도 또한 영좌교의를 그린 것인지 신좌교의를 그린 것인지에 따라 그 용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조선시대 의례서의 기본이 되었던 주자가례(朱子家禮)상례편과 다른 제례서들을 참조하여 상례 과정에서의 교의의 용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시신의 염습이 끝나면 시신의 남쪽에 횃대를 세우고 수건으로 덮는 다. 이 휘장

  밖에 의자와 탁자를 그 앞에 놓아 영좌를 만들고 혼백을 설치한다. 향로, 향합,

  술잔, 주전자, , 과일을 탁자 위에 진설 한다.

멀리서 어버이의 상을 들었으나 갈 수 없는 경우 의자 하나를 설치하여 시신의

  관을 대신하고, 좌우 전후에 자리를 설치하여 곡()하기를 의례대로 한다.

  전제를 올리지는 않는다. 만약 상을 당한 측에 자손이 없으면 여기에 의례대로

  전을 진설한다.

상여가 장지에 도착하면 영위를 차려놓고 상주는 조문을 받는다.

대상을 마치면 신주를 사당으로 들인다. 영좌를 거두고 지팡이를 부러뜨려 구

  석진 곳에 버리며 조천한 신주는 옮겨 묘소 옆에 묻는다.


 

여기서 주목해볼 것은 주자가례문상(聞喪)조에 멀리서 어버이의 상을 들었으나 갈 수 없는 경우 의자 하나를 설치하여 시신의 관을 대신하고, 좌우 전후에 자리를 설치하여 곡하기를 의례대로 한다.’ 규정이다. 신주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상태에서 그리고 빈소가 아닌 곳에서는 혼백을 별도로 만들지 않고 교의로 망자의 혼백을 대신함을 알 수 있다. 제사에서 신주를 대신하여 지방을 사용하듯이 상례에서는 혼백을 대신하여 교의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일단의 교의 그림 제작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교의도 중 유일하게 화제가 있는 국학진흥원 소장의 교의도 상단에는 영위도(靈位圖)라 쓰여있고, 영위(靈位)라 함은 상가(喪家)에서 모시는 혼백이나 가주(假主)를 의미하는 것이니 그 용도가 상중에 사용되는 것임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주자가례사례편람(四禮便覽),가례증해(家禮增解)등과 같은 예서 속에서도 영위와 신위의 개념은 구분하여 사용되고 있음을 볼 때 영위도는 상례를 위한 용도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현존하는 교의도 중에는 사당도와 달리 인쇄본이 존재한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판화가 갖는 대량제작의 수월성과 일회성의 용도라는 특징으로 미루어 볼 때 교의도가 다른 장례물품과 마찬가지로 상례에서 일회성으로 사용하고 폐기하였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 사실이라 하겠다.

가례증해와 같은 주석서들에서는 주자가례문상조의 상황을 좀 더 자세하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 근거로 교의도를 사용하였을 상황을 재구(再構)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교의로 시신을 대신해야하는 상황으로는 가령 외국에 사신으로 나가있다가 사망하거나 임지에서 사망하여 시신이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든가 또는 반대로 부모의 부고를 받고 임지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상황 등으로 설명될 수 있다. 상가를 향해 길을 떠난 도중에 곡을 해야 하는 규정에 대한 설명도 있다. 하루에 100리를 가되 밤길은 가지 않으며 도중에 슬픔이 이르면 곡을 하되 시읍(市邑)이나 시끄럽고 번화한 장소는 피하라는 것 등이다. 이러한 부득이한 상황에서 특히 집이 아닌 도중(道中)에서 휴대하기 편하도록 족자형태로 된 교의도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사당도와 달리 교의도 중에는 목판화로 제작된 인쇄본들이 있어서 사당형과 같은 지속적인 용도가 아닌 비교적 일회성의 용도를 지닌 곳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상례의 과정에서 곡을 하기 위한 대상으로서의 용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교의도의 경우 문헌상으로 볼 때 원래는 상례를 위한 용도로 제작되었을 것이지만 사당도와 마찬가지로 제례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교의도 중 교의 등판에 지방자리를 흰 여백으로 남겨둔 그림이나 지방자리는 없지만 지방을 붙였다 뗀 것과 같은 흔적이 남아있는 그림들이 있기 때문이다. 주자가례규정대로라면 곡을 위한 장면에서는 교의는 그 자체가 혼백을 상징하는 것으로 다른 가주(假主)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교의도 중 지방자리가 배려된 것들과 또 지방자리는 없지만 지방을 붙였다 뗀 것과 같은 흔적들의 존재는 제사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으로 실제의 교의는 사당에서 신주를 올려놓는 용도의 제구이며 상례의 장면에서는 망자의 혼백을 올려놓는 용도와 아울러 부득이한 사정에서는 혼백을 대신하는 상징적 의미로도 사용됨을 보았다. 교의도 역시 경제적인 이유로 이러한 제구를 갖출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한 대체물이며 상례에서 혼백을 대신하는 용도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실제의 교의나 혼백을 대신하여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런 까닭에 감모여재도의 범주를 사당도와 교의도를 통칭하는 것으로 규정하겠다면 감모여재도의 용도는 제사용도만이 아닌, 상제례를 위한 그림으로 정의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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