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민화의 저력
글쓴이 정병모
조회수 3199
<HEADER class="entry-header clearfix">

민화의 저력 – 정병모

</HEADER>
월간민화 7월

한국미술사에서 주목할 만한, 그러나 미처 주목하지 못한 현상이 있다. ‘민화의 유행’으로, 무려 두 시기에 걸쳐 이루어졌다. 조선 중기, 임진왜란부터 병자호란까지 네 번의 혹독한 전쟁은 사회와 문화를 크게 양분할 만큼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견고하게 굳어진 신분제도가 흔들리고, 형이상학적인 철학논쟁에 치우쳤던 성리학에서 실질적이고 일상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실학으로 관심의 방향이 옮겨갔다. 이러한 변화 속에 18세기는 서민의 일상을 화폭에 담은 풍속화가 유행했고, 19세기에는 민화가 성행했다. 민화 이미지가 건축, 가구, 자수, 복식, 도자기 등 여러 생활문화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사찰의 벽화나 불화에까지 그려질 만큼, 민화는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주목할 사항은 민화의 유행을 궁중 화원이나 사대부 화가와 같은 엘리트 화가들이 아닌, 무명의 서민 화가들이 주도했다는 점이다. 엘리트 화가들이 구사하기 힘든 자유로운 상상력과 재창조의 힘을 보여주었다. 창의성이 풍부하고, 유머코드가 있으며, 구수한 스토리텔링이 있고, 한국적인 색채가 뚜렷한, 현대인의 취향에도 ‘딱’ 맞는 전통문화인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무명화가들의 반란’이라 부른 바 있다.

또 다른 반란은 아마추어 화가들의 힘으로 현재 진행 중이다. 1970년대부터 조자용을 비롯한 문화계 인사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전통민화의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렸다. 한국전쟁 직후 급격하게 불어 닥친 서구화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민족주의의 영향도 컸다. 21세기에 접어들자 민화를 그리는 작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지금 이들은 단순히 취미로 치부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술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미술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인사동에서 민화 전시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고, 미술재료 상점의 운영이 민화작가들 없이는 어려울 정도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전국 각지에서 전시회나 이벤트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월간 <민화>의 창간도 그러한 추세의 반영이라 하겠다. ‘민화작가들의 돌풍’이다.

그런데 현대 민화가 붐을 일으키는 그 중심에는 ‘아줌마’라 불리는 고학력 중·상류계층의 주부들이 우뚝 서 있다. 물론 전문직의 여성과 남성작가도 적지 않지만, 주류는 단연 아줌마들이다. 한국 어머니 특유의 모성애와 왕성한 에너지로 무장한 이들은 현대 문화산업의 흐름을 좌지우지할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민화는 새로운 문화 수용층인 그들에게 예술적 자부심, 빠른 성취감, 건강한 미의식을 제공한다. 존 러스킨(John Ruskin)과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같은 19세기 영국 미술이론가들은 특정 소수가 아니라 평범한 다수가 미술을 즐기고 향유하는 ‘미술의 대중화’를 꿈꾸었고 이념과 방향을 제시했지만, 실제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날 여기서, 뛰어난 이론가가 아니라 평범한 아줌마들이 하나둘씩 민화를 즐기는 사이 자연스럽게 미술의 대중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한국적인 풍경이다. 두 시기에 걸쳐 일어난 ‘민화의 유행’은 역사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19세기는 양반이 문화 전반을 주도하는 시대, 무명의 서민 화가들이 이룩한 업적이라는 점에 의의를 찾고, 21세기는 미술이론가가 아니라 아줌마 집단의 힘으로 이룩한 성과라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민들레처럼 어떤 역경에서도 사그라지지 않고 역사적 계기(繼起)를 통해 되살아나는 ‘민화의 놀라운 힘’이다.
 

정병모 교수
정병모
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
한국민화학회 회장
(사)한국민화센터 이사장



서비스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북 경주시 충효동 2942 대우2차 상가동 203호
copyright 2011 KOREA MINHWA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