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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조선의 붓, 색에 물들다
전시회일정
조선의 붓, 色에 물들다
가나아트갤러리 신사동 호림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까지 조선 채색화 전시·재조명
부귀영화·장수·다산…인간이 희구하는 상징 18 ~ 19세기 조선 상류층 책가도로 고급취향 과시
매일경제 2013.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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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천재 임금 정조(1752~1800)는 유별난 책벌레였다. 어느 날 창덕궁 선정전에서 집무를 보던 그는 어좌 뒤에 있던 오봉병(일월오악도) 대신 책을 그린 책거리 병풍을 세우라고 했다. 왕가의 관례를 깬 파격이었다.

"짐도 평일에는 책을 즐겨 읽지만 일이 많아 책을 볼 시간이 없을 때는 책가도(冊架圖ㆍ책거리)를 보며 마음을 풉니다."

신하들에게 건넨 말에서 그가 얼마나 책을 사랑했는지 엿볼 수 있다. 정조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당대 최고 도화서 화원이자 자신이 아꼈던 단원 김홍도에게 책가도를 그리게 했다.이쯤 되면 고관대작들도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앞다퉈 책가도를 주문해 사랑방에 설치했다. 책거리를 벽에 도배하지 않은 귀인(貴人)은 한 명도 없다는 기록이 전해질 정도였다.

궁중과 상류층을 뒤흔든 책가도 열풍은 시간이 흘러 서민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아쉽게도 정조 당시의 책가도는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19세기 민화에서 그 위용과 흔적을 짐작할 수 있다.

책가도는 서가 칸칸이 책은 물론이고 도자기 문방구 과일 꽃을 배치한 그림이다. 2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밝은 색과 반복적인 패턴에서 현대적인 감성을 물씬 풍긴다.

책가도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궁중회화와 민화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주요 화랑과 미술관, 박물관에서 같은 시기에 열려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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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는 `길상(吉祥) 우리 채색화 걸작전`이, 신사동 호림박물관에서는 `상상의 나라-민화여행`전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더구나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에서는 민화라는 이름을 처음 지어준 일본 문예비평가 야나기 무네요시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공교롭게 세 전시가 맞물리면서 조선 회화의 한 축인 채색화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다.

채색화와 수묵화를 나누는 것은 채색 방식에 따른 것이다. 화려한 색으로 그린 그림은 채색화, 수묵화는 검은 먹빛으로 그린 그림이다. 사대부들이 주로 수묵 문인화를 즐겼다면 18~20세기 꽃을 피운 궁중회화와 민화, 불화 등은 채색화로 분류된다.

윤범모 가천대 교수는 "우리 그림의 역사로 보나, 현재 남아 있는 작품 숫자와 규모로 보나, 수묵화보다 채색화 분야가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며 "한국회화사의 주류는 수묵화가 아닌 채색화"라고 말했다.

이원복 경기도박물관 관장도 "우리 옛 그림에 있어 그 주류를 수묵담채로 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며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고려불화, 궁중회화와 의궤도, 민화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진채의 채색화는 1700년간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그간 채색화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그린 것들이어서 수묵화에 비해 격이 낮은 그림으로 폄하됐으나 현대에 들어서 재평가되고 있는 셈이다.

현대사회가 채색의 시대인 만큼 묵직한 수묵화보다 화려한 채색화가 어필하는 측면이 크다. 실제 지금도 민화를 연구하고 그리는 사람은 10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고졸한 맛이 있지만 어려운 수묵 문인화보다 채색화는 정겨운 색감이 눈길을 확 휘어잡고 무엇보다 친근하고 이해가 쉽다.

채색화가 담는 주제는 `행복ㆍ무병장수ㆍ자손번창ㆍ출세`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인간이 가장 희구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특히 책가도는 18~19세기 조선 상류층의 유행과 취향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당초 정조의 의도와 달리 책가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세도가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과시용 아이템으로 바뀌었다.

청나라에서 수입한 화려한 도자기와 문방사우가 서가에 등장하고 책과 전혀 관련 없는 술병과 주전자, 바둑판, 시계, 분재, 안경, 거문고 등이 그려진다.

여기에 부귀를 상징하는 꽃과 장수를 뜻하는 십장생, 자손 번성을 상징하는 여러 과일도 함께 더해진다. 더구나 여자의 치마, 꽃신, 족두리가 난무하는 자유분방한 에로티시즘의 공간으로 확대ㆍ변질되기도 했다.

채색화로 분류되는 궁중회화와 민화는 행복을 바라는 주제는 같지만 크기와 안료 면에서 차이가 있다. 궁궐에 쓰이는 궁중회화는 폭이 2m가 넘는 대작들인 데 비해 민화는 아주 작다. 또 궁중회화는 도화서 화원들이 비단에 고급 안료로 그리는 것에 비해 작자미상인 민화는 주로 종이에 저급 안료로 그린다. 사대부들이 구입한 민화 중에서도 더러는 고급 재료로 그린 그림도 있다.

궁중회화와 민화는 그림 속 상징을 알면 알수록 재미있다. 꽃과 새를 그린 화조도의 경우 `꽃 중의 꽃` 모란이 많이 그려진다. 활짝 핀 모란은 부귀영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쌍으로 노니는 원앙은 부부간의 금실을, 물고기는 다산을 상징한다. 물고기는 알을 많이 낳기 때문이다. 씨앗이 많은 석류나 수박ㆍ포도송이도 다산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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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부터 상류층, 서민층까지 열풍이 불었던 책가도.

출세에 대한 욕구는 물고기 그림인 어해도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강을 거슬러 오르는 메기나 쏘가리로 자주 표현됐다. 메기는 대나무에 오르는 재능이 있기 때문이고 쏘가리는 한자어로 궐어라 하는데 그 궐자가 대궐의 `궐`자와 발음이 같다.

또 버드나무를 자주 그린 이유는 벼슬길에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의미를 띠고 있다. 버드나무 류(柳)는 머물 류(留)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십장생에 주로 보이는 소나무는 장수를 상징한다.

또 호랑이와 용 해태 등 동물은 액을 물리치는 벽사로 자주 그려졌다. 궁중회화 대작들이 걸려 있는 가나아트갤러리에는 호피 무늬만 그린 8폭 병풍이 눈길을 확 잡아끈다. 그 패턴과 색감이 유명 현대미술 작품을 뺨칠 정도다.

민화 연구가인 정병모 박사는 "밝고 명랑한 민화가 절정기를 구가한 18세기와 20세기 초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또 조선 종말을 겪은 뒤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사회적 격변기와 위기 의식 속에 사람들은 더욱 원초적이고 기복적인 믿음을 갈구하게 마련"이라고 해석했다.

[이향휘 기자]
작성자 매일경제
작성일자 2013-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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