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영화 "역린”속의 책거리 병풍
글쓴이 정병모
조회수 6073

영화 "역린”속의 책거리 병풍


 


 


정조와 책거리병풍


 



영화 “역린”을 보면, 첫머리에 정조의 역을 맡은 미남 배우 현빈이 앉아 있는 어좌 뒤에 책거리병풍이 펼쳐져 있다. 원래 일월오봉도를 두는 것이 관례인데, 의외로 책이 가득한 책거리병풍이 보인다. 책거리란 책을 비롯한 관련된 여러 가지 물품을 그린 그림으로, 특히 서가[책가]에 책을 꽂은 책거리는 '책가도(冊架圖)’라 부른다. 기록에는 정조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린 정조라 하더라도 병풍 하나 제작하는데 몇 개월이 소요되는 일인지라 직접 그릴 만큼 여유롭지 않았을 테고 당시 책거리로 유명하고 정조가 가장 아끼는 화원인 김홍도가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 즉, "정조의 기획과 김홍도의 창작"으로 새기면 무난할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지금 그 그림은 전하지 않는다.


 

왜 정조는 일월오봉도 대신 책거리를 설치했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군사(君師)”다. 임금은 정치가이면서 스승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적으로 백성을 다스릴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가르쳐야 된다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순자는 예에는 세가지 근본이 있는데, 그 가운데 군사는 세상을 다스리는 일의 근본이라 했다. 조선시대 임금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군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는 율곡 이이(1536~1584)다. 그는 『성학집요 聖學輯要』에서 군사의 의미와 중요성을 설파했다.


하지만 군사는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임금 밑의 신하들은 대부분 당대 쟁쟁한 정치가이자 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제압하려면, 그들보다 뛰어난 정치적 역량과 학문적 실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실제로 그것을 실천에 옮긴 임금은 영조였고, 그 유지를 받들어 정조가 학문에 힘썼다. 워낙 당쟁이 심해 사도세자까지 뒤주에 가둬 죽일 판이니,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갖춰야 할 교양인 것이다. 정조는 신하들을 능가하는 학자가 되기 위해 밤새도록 공부에 열중하고 새벽닭 우는 소리가 들린 다음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 덕분에 184권에 이르는 방대한 문집인 『홍제전서』를 남길 만큼의 실력을 갖췄고, 신하들과 학문으로 한판 뜰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다.  


 

실제 이 병풍을 선보인 이듬해에 당시 신하들 사이에 유행한 청나라 패관문학의 세속적인 문체에 대해 문제를 삼고 고문의 정통적인 문체로 돌아가야 한다고 제동을 걸었다. 바로 ‘문체반정’이다. 그것은 꼭 청나라 패관문학의 문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빌미로 신하들을 학문으로써 제압하기 위해 취한 정치적 제스처인 것이다.
   
 

 정순왕후​



노론의 척신세력을 등에 업은 할마마마 정순왕후는 정조를 살해하려는 음모의 중심에 서있다. 영조가 늘그막에 맞이한 계비라 손자뻘인 정조와 7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결국 그 음모는 실패하지만, 정조는 정순왕후를 죽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 역을 맡은 한지민이 예뻐서가 아니라 죽이지 말라는 영조의 유시 때문이다. 집권 초기부터 암살의 음모와 목숨 건 투쟁을 벌여야 하는 정조라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가 왕권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풀어야 할 현안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맥 속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책거리 병풍이다. 즉, 정조 뒤에 펼쳐진 책거리는 신하들과 학문으로 겨뤄보겠다는 선전포고인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책거리병풍은 역린의 배경이 되는 시기인 정조가 즉위한 시기인 1777년보다 14년 뒤에 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재규감독은 너무 일찍 책거리병풍을 펼친 것이다. @ 정병모




서비스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북 경주시 충효동 2942 대우2차 상가동 203호
copyright 2011 KOREA MINHWA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