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맨체스터産 면에 실은 대한제국 엄비의 극락왕생 꿈
글쓴이 김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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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産 면에 실은 대한제국 엄비의 극락왕생 꿈>


괘불의 인장

1902년 제작 고양 한미산 흥국사 괘불, 영국산 직물에 그려져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맨체스터 글로버 컴퍼니(Manchester Glover Company)"

2005년 청곡사 괘불(卦佛) 이래 순차적으로 의식용 괘불을 전시 중인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는 그 일환으로 올해 부처님오신날을 전후해서는 경기 고양의 노고산(老姑山) 흥국사(興國寺)에 있는 괘불을 걸기로 하고 이 불화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다가 이상한 마크 하나를 발견했다.

높이 628㎝, 폭 381㎝에 이르는 괘불 아래쪽 뒷면에는 'Manchester F.H. Glover & Co'라는 글자가 선명한 원형 도장이 확인된 것이다. 나아가 불화를 그린 재질을 보니 면이었다.

이 전시를 담당하는 유경희 학예연구사는 "대한제국 시절인 1902년, 황실의 안녕을 기원하며 제작한 이 불화를 그린 바탕재질이 영국 맨체스터에서 생산된 면임을 알려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를 제작한 맨체스터 글로버 컴퍼니는 정확한 실체를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고 유 연구사는 덧붙였다.

개항 이후 조선에 들어온 외국산 수입품 중에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 품목이 면 제품이고, 이들은 서울과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구매력이 있는 상류층에서 많이 소비했다는 사실은 역사학계에서는 널리 알려졌다.

괘불

한데 뜻밖에도 흥국사 괘불 역시 왕실 발원 불화라 그런지 영국산 수입 면제품을 바탕 재질로 삼아 제작한 것으로 이번에 확인된 것이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89호로 지정된 이 불화는 큰 화면 안에 극락세계 부처인 무량수불(無量壽佛)을 중심으로 관음·세지보살, 가섭·아난존자, 그리고 문수·보현보살의 일곱 존상을 그려 넣었다. 무량수불은 손은 길게 내밀어 극락에 왕생할 자를 맞이하는 모습이며, 주변에는 상서로운 기운이 오색구름을 만들어 내는 풍광을 묘사했다.

이 괘불에는 여타 조선후기 괘불이 그렇듯이 화면 아래쪽에 누가, 언제, 무슨 일로 불화를 만들게 되었는지를 정리한 화기(畵記)가 묵 글씨로 씌어 있다.

이에 의하면 괘불은 광무 6년(1902) 임인 7월25일 정진불자 등이 몸과 마음을 다해 그려 한미산(漢美山) 흥국사(興國寺)에 봉안했다. 한미산은 지금의 노고산으로, '한미'는 할머니에 해당하는 '할미'를 그대로 소리로 옮겨 적은 것이고 노고(老姑)는 그에 대한 한자어 표기인 것이다.

화기를 보면 괘불은 "중생이 극락국에 태어나 무량수불(아미타불)을 만나고 모두 함께 불도에 이르게 하기"를 기원하며 그렸다.

더욱 구체적으로 보면 대황제폐하와 황태자전하, 황태자비전하, 엄비전하, 영친왕전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뜻을 담았다.

제작은 근대기의 대표적인 불화승(佛畵僧)인 경선당(慶船堂) 응석(應釋)이 맡아 했다. 그는 주로 서울과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불화를 그렸다.

엄비

화기에는 괘불 제작 발원자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다.

하지만 동아일보 1966년 2월19일자에 실린 '절에서 쫓겨난 구순(九旬)의 충국승(忠國僧)'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발원자가 바로 상궁으로 있다가 훗날 고종황제의 계비(繼妃)가 되는 순비(淳妃) 엄씨(嚴氏)임이 드러난다.

기사에 의하면 쫓겨난 구순 스님은 흥국사 주지를 역임한 해송(海松)으로 당시 나이는 91세.

엄비는 금강산 건봉사에서 10년을 수도한 본명 전효열(全孝烈)인 해송을 1904년 흥국사 주지로 앉히고 약사전 앞 미타전을 25칸으로 증축하는 한편 그 해 11월부터 아들인 영친왕의 강녕을 기원하는 대기도회를 장장 28년에 걸쳐 하게 했다.

이에 흥국사에서는 봄 여름 없이 매일 새벽 인시(寅時)에 일어나 한미산 기슭 바위틈 맑고 찬 석간수에 목욕재계한 기도승 7명이 미타전(彌陀殿) 넓은 방에 향과 촛불을 밝혀 재단 아래 가부좌하고 나무아미타불을 하루 1만번 씩 합송(合誦)했다고 한다.

유 학예사는 동아일보에서 말하는 이 일이 바로 흥국사 괘불 제작과 직접 관련돼 있다고 하면서 "요컨대 괘불은 엄비의 발원으로 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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